라인을 퇴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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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했습니다.

정들었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1년 5개월)이었지만요.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처음으로 해외 출장도 가보고, TF에 참여해서 심도있게 기술 공부도 해보고, 장애도 내보고 (?!), 뛰어난 동료들을 만나기도 하였고 그들에게서 많이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주로 일본에서 하는 서비스이다 보니, 일본에 출장을 가서 많은 추억을 쌓기도 했고, 나름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기분도 나고, 사람들과 영어로 업무를 보는 경험은 국내 어느 회사에서도 이만한 규모의 회사에서 얻기 힘든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코로나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퇴직을 하게 되어 뜻밖의 (?) 경제적 공백이 생기는 등 우여곡절도 많이 생겼네요. 처음으로 이런 상황을 겪어봐서 (모두들 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시겠지만, 직장이 이렇게 된 것은 정말 처음입니다. 제 발로 나왔는데 의도치 않게 무직이 되어버렸네요.) 난처하고, 아내는 이런 기회에 쉬지 언제 쉬냐며 그랬지만, 여행도 못가고 꼼짝없이 집에 있으니 참 외롭고 적적하고 그렇습니다. ㅎㅎ 물론 아내랑 이것저것 계속 같이 하고 있지요.

너무 가고 싶은 회사를 너무 빨리 들어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라인은 제가 처음 개발자로 취업을 할 때부터 가고 싶은 회사였습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자신이 그 회사의 구성원이 되고 싶어 하듯이, 저에게는 라인이 그런 회사였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거 일본 회사 아니요. 일본판 카톡 아닙니까 하는 말씀을 하실수도 있지만, 저의 개발자 커리어 멘토님과 글로벌 회사로의 진출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해외에서 아는 기업을 택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또 한국에 소재하고 있는 기업이면서 동시에 다른나라 사람들과 같이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정말 가고 싶은 회사였습니다.

신입으로 지원할 때에는 뭔가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황이어서, TCP와 UDP 개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TCP 3-way handshake도 제대로 설명 못할 정도로 개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정말 이를 갈면서 준비했고 2년차 주니어 개발자로 마침내 라인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주니어 개발자로서의 라인은 정말 정글이었습니다. 수평적인 분위기를 제창하는 라인의 분위기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것 시도해 볼 수 있는 회사였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제가 져야 하는 회사였지요. 제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일을 벌리면 적당한 검토 이후에 할 수 있게 되지만, 그에 따른 성과가 나지 않을 경우에는 온전히 제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근데 제가 책임만 지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특정 프로젝트나 어떤 일들에 대하여는 저 혼자서 할 수 없는 상위 결정을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무언가 회사의 보안이나 약관의 선을 넘느냐 안넘느냐하는 아슬아슬한 문제를 풀게 되는 경우에는 초기에 이런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작업을 다 하고나서, 기능을 릴리즈하기 직전에 검토 프로세스를 진행하게 됩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대강 이해하셨죠? 해당 문제가 연말즈음에 발견되어서 리뷰를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죠. 개발은 모두 끝난 상황이었고, 해당 검토만 승인이 되면 문제 없이 나가는 상황이었는데, 상위에서는 이것이 성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네, 인정받기가 조금 어려운 상황이었죠. 아무래도 주니어 개발자이다보니 요런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부족함이 많았지만, 회사 분위기가 내가 직접 알아서 챙기지 않으면 누가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 분위기이다 보니 마음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건 평가 때 여실히 드러났죠.

네임드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

저는 평범한 개발자입니다. 뭐 말 그대로 코딩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계 능력이 뛰어나서 무결점의 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이지요. 그냥 노력을 많이 해서 운이 좋게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는 주니어 개발자에게 시니어 개발자 정도의 퍼포먼스를 요청하는 곳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시니어 개발자로 입사하였다면 그만한 인사이트와 능력을 (조금이나마) 갖추고 있었을테니 조금더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제가 일할 때의 저희 파트는 정말 사람이 부족했고, 일도 정말 사람수에 3배는 많은 일이 밀려들어와서 말그대로 모든 팀원이 번아웃에 가까운 상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힘들게 일하면 역시 자본주의 사회라면 자본으로 보답을 받아야 했지만, (저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헀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일들이 제 발목을 잡았거든요. 다른 분들과 이야기 해보니 병특이 끝나는 해는 보통 사람들이 이직을 많이 결심하기 때문에 조금 더 챙겨준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더 적은(?) 느낌.. ㅎㅎㅎㅎㅎㅎㅎ 제가 그만큼 기대치 대비 일을 못한것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면접 때 내가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지..)

주니어로서 성장의 한계도 보였습니다.

예전에 게임에서 쩔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분 있으실 것입니다. 고렙 유저가 저렙 유저를 대리고 고렙 파티 사냥터에 가서 경험치를 채워서 일정 레벨까지 올려주는 작업을 말하는데요. 문제는 게임에서는 너무 고렙 사냥터에 가게 되면, 경험치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시스템이 있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딱 그 케이스가 제게 적용된 느낌이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들은 기술적인 차원이 높은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저렙이고, 그렇다고 고렙 (시니어 개발자) 분들에게 쩔을 받자니, 그분들은 그분들 일로 너무 바쁘셨습니다. 뭔가 제대로 멘토링이 되지도 않고, 성과는 내야하고, 진도는 나가지 않는 상황. 정말 스트레스가 미치도록 터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상황을 즐겼을 것입니다. 대학생활이 그랬거든요. 학업으로 치이면서도 온갖 멤버십을 하면서 번외로 종교생활도 열심히 해가면서 살았었습니다. 문제는 이제 저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쓰러지면 안되었고,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해야만 했습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는 있어서는 안되고 벌써 와서는 안되는 단어였거든요. 어떻게 보면 조금 더 편한 일을 해야할수도 있겠다라는 위기감과 패배의식이 제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였습니다.

팀의 불화도 찾아왔습니다.

같이 일하시는 분이 이 숨막히는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번아웃을 선언하였습니다. 팀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죠. 팀에서는 협업의 분위기는 사라지려고 하고, 뭔가 각자 도생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가 찾아왔습니다. 모두 재택근무로 들어갔죠. 저는 업무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지만 업무외적인 친분도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 서로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것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라 할지라도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게 된 것이죠. 모두가 서먹서먹 해지고 협업은 어려워지고, 대화도 단절되었습니다. 안그래도 혼자 해쳐나가야하는 일에 같이 이러한 불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들도 사라지게 된 것이죠.

저에게는 너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죠.

꿈과 희망에 가득차서 입사를 했건만, 이제 회사는 저에게 성장의 기회보다는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시기만 지나면 나아질 것을 알고 있었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팀 동료들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개발자 동료들이었고, 개발자로서 제대로 흐름에 탈 수 있다면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깐요. 하지만 그 시기에 한 리크루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Hey Junho! I read your profile and your background looks like a grate match for our experienced software engineer position!

음? 내가?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장난삼아서 보여줬죠. 난 이런 사람이다 ㅎㅎㅎ 외국인들도 나를 알아보고 메일을 보낸다. (물론 저거 메일머지 처럼 기능으로 리크루터들이 뿌리는 메일인걸요) 아내는 심각해지더니 지원해야하는거 아니냐며 다그쳤습니다. 이런 기회 다시 안온다. 우리에게 아기가 생기면 이제 이런 기회는 꿈도 못꾼다. 라며 말이죠.

그리고 꿈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메일을 받고 경험삼아 지원해보자던 기업에 합격했습니다. 서울 채용 이벤트였기에 제가 회사로부터 비행기표를 받아 면접을 보러가는 그 책에서만 나오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구요 ㅋㅋㅋㅋ 대신 면접 전날에 호텔을 제공받아서 편안하게 자고, 면접으로 4시간동안 혹사당했습니다. 그리고 붙었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어떻게 또 비자는 나왔고 이제 다음달이면 머나먼 이국땅에 객지로 가게 됩니다. 참.. ㅎㅎ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뭔가 또 이런 넋두리를 할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한 여유가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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